쇼핑을 위해 짐도 가볍게 쌌고, 직항을 타서 번거로움도 없었다. 디트로이트 공항에 발을 내디디기까지, 여기까진 일사천리였는데 소소한 문제가 딱 하나 남아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인 미국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일. 안경을 고쳐 쓰고는 이민국 직원이 물었다. 디트로이트에 왜 왔니? 자동차 박람회의 시즌도 아니었고, 자동차 관련 비즈니스로 방문한 관계자처럼 보이지도 않았겠지. “음악 그리고 카지노” 이렇게 대답했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Have a wonderful stay!”

 

옛 명성 되찾기 도시 프로젝트 D

 

이 곳은 고급스런 부티크 호텔 서머셋. 요 며칠의 시간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디트로이트의 이면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관대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가득 찬 오늘 아침은 느릿느릿 느긋하게 보낼 생각이다. 최대한 우아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길 건너에 위치한 서머셋 콜렉션에 가서 쇼핑을 할 예정이다. 어제의 아울렛 쇼핑에서 치열하게 건져낸 코우치 가방을 포함한 몇몇 아이템들은 이미 이 여행의 비행기 값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다음엔 정말로 이민국에 말했던 대로 ‘음악’ 만을 테마로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내심 너무나 기뻐하는 눈치다.

인구 90만 명, 크기로만 보면 미국 11번째 도시, 메트로폴리탄 디트로이트까지 합치면 500만명이 넘는 디트로이트는 억울한 도시다. 과거에 너무나 화려하게 번성했었던 곳이다 보니 마치 정상에 올랐던 최고의 스타가 약간의 실수로 이미지가 추락한 것처럼 사람들은 계속 어두운 면만 기억한다.

디트로이트는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D’ 라는 임팩트 있는 심벌로 도시의 이미지 메이킹을 다시 하고 있었다. 세련된 D, 트렌디한 D, 여유롭고 풍부한 D, 새로운 디트로이트!

캐나다와 축제도 함께 열어

 

사계절 아름다운 호수는 인간에게 평화와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휴양과 레저 활동이 발달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5대호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호수와 강의 도시 디트로이트를 가로지르는 디트로이트 강변에 서면 맞은편에 캐나다의 작은 도시 윈저가 보인다. 두 도시는 앰버서더 브릿지와 터널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하루에도 50편이 넘는 버스가 운행한다. 1불 50센트만 있으면 미국과 캐나다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윈저, 디트로이트 두 도시는 해마다 Windsor-Detroit International Freedom Festival 을 공동 주최한다. 캐나다의 독립기념일인 7월 1일과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기념하여 열리는 축제인데, 큰 규모의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도 있다. 지리상 워낙 가까워 한 지역 공동체처럼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여권이 필요한 미국과 캐나다란 다른 나라다.

어디나 그렇듯이 부자들의 별장, 놀이터는 호수나 강가에 위치한다. 도심을 벗어난 디트로이트 외곽지대에는 영화에나 나올듯한 거대 맨션들이 호수가나 강가를 끼고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은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않는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 관계자들도 디트로이트를 많이 찾는데 이는 도시에서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이유도 있다고 한다. 최근엔 트랜스포머 3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스포츠에 대한 열광이 시민의 역동성 보여줘

 

디트로이트는 스포츠와 음악의 도시다. 4개의 프로 선수단이 이 곳에 연고지로 두고 있다. 시내엔 3곳의 주요 스포츠 경기장이 있는데 메이저리그 팀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코메리카 파크, 내셔날 풋볼리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포드 필드, 내셔날 하키리그 디트로이트 레드 윙스의 조 루이스 아레나가 있다.

코메리카 파크의 진수를 경험했다. 마침 타이거스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 거대한 경기장은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회전목마를 타는 사람, 펍에서 먹고 마시며 스크린으로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사람, 자녀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사람…먹거리 놀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하나의 테마파크인 코메리카 파크는 야구 경기만을 위한 단순 경기장은 아니었다. 승부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각자의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필자의 오후도 야구경기장에서 아니 테마파크에서 그렇게 흘러갔다. 누가 이겼대? 관객의 분위기로는 누가 이겼는지 눈치채기도 힘들다. 밝은 표정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 그날의 경기는 홈팀의 패배였다.

에미넴와 에이콘의 고향 디트로이트 시티

 

디트로이트는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는 곳이다. 테크노 음악이 처음 태어난 곳도, 에미넴과 에이콘의 고향도 디트로이트이다. 그러나 음악 이야기를 하자면 빠지지 않는 것이 모타운이다. 흑인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들이 아니라도 모타운 뮤직이 음악 역사상 얼마나 큰 획을 그었는지 알거다.

1965년부터 1972년 7년 동안 모타운에서 발표된 빌보드 탑텐 히트곡은 무려 79곡. 한 해 열 곡 이상의 대박 행진을 한 히트곡 제조 공장이었다. 그래서 모타운 사운드라 하면 소울 음악 전문 레이블인 모타운 레이블의 음악을 가르키는 말이면서도 1960년대부터의 흑인 음악을 총칭하기도 한다. 참, 모타운은 디트로이트의 별칭인 ‘모토타운’에서 따온 이름이다.

모타운 레코드사는 1959년 베리고디 쥬니어가 부모님에게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 800불로 시작한 작은 레이블이었다. 이곳에서 마빈 게이, 아레사 프랭클린, 스티비 원더, 템프테이션스, 수프림스 같은 쟁쟁한 흑인 가수들을 발굴해 냈다. 잭슨 파이브, 마이클 잭슨으로 이어지는 전설을 잉태한 곳, 이곳은 모타운 본사가 LA 로 이전한 이후 박물관으로 재탄생 되었다. 모타운 뮤지엄을 방문한 그 날은 운좋게도 Dancing in the street 를 부른 마사 앤 더 밴덜러스(Martha and the Vandellas)의 싱어, 마사 리브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블링블링한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고 붉은 색 재킷을 차려 입고 쿨하고 멋진 ‘모타운 애티튜드’로 뮤지엄의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다.

모타운 사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모타운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했다. 당시 모든 것을 모타운 방식으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덕분에 가수들은 모타운 룩, 모타운 스타일, 모타운 댄스, 모타운 사운드로 완전 무장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삶속에 모타운 애티튜드로 적용되고 있었다.

모타운 스타일이란 당시 백인들이 떠올리는 흑인다운 행동과 흑인의 스타일과 상반된 우아하고 기품있고 스타일리시함을 뜻했다. 1988년 모타운은 MCA에 매각되었고, 이후 폴리그램으로 경영권이 넘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모타운 사운드는 이 곳 디트로이트에 살아있었다.

카지노 도시다운 시크한 호텔

 

디트로이트는 카지노의 도시이기도 하다. 총 세 개의 카지노가 있다. 시내의 그릭타운 카지노호텔은 100년 이상 된 오래된 빌딩을 개조해 만들었다. 1불 50센트를 내면 시내 어디든지 데려다 주는 ‘피플무버’를 타고 그릭타운역에 내리면 된다. 주변엔 저렴하고 맛있는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미국의 역사보다도 더 오래된 310년 된 도시답게 도시곳곳은 고풍스런 빌딩들과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득하다. 현대적인 고층빌딩과 아르누보 스타일의 프랑스풍 건물들이 어우러져 묘한 어울림을 연출하고 있다. 그릭타운 카지노 호텔의 객실에선 도심의 전망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새로 생긴 모토시티 카지노 호텔은 세련된 디자인과 시크함으로 무장한 컨셉 호텔이다. 슬롯머신 기술자로부터 호텔의 CEO로 성장한 그렉 솔로몬은 디트로이트의 반짝이는 미래의 모습과 닮아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고객을 충족시키기 위한 최첨단 시설들로 완전 무장한 이 호텔은 사람을 주눅이 들게 할 정도로 화려하고 시크했지만 가격은 참하다. 이것이 카지노 호텔의 매력. 카지노를 즐기지 않더라도 카지노호텔에 머물면 좋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금액을 나름 정해 놓고 제한적으로 즐기는 슬롯머신과의 한판승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언제나 쾌락은 조절이 필요하다. 너무 빠져들기 전에 얼른 패스. 불빛이 반짝이는 디트로이트의 밤은 화려하다.

자동차 도시의 전설 포드가는 꼭 들려봐야 할 명소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인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 그래서 자동차 이야기는 정말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큰 포드의 흔적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자동차가 아닌 헨리 포드 이야기다. 헨리 포드는 엄청난 재력가이자 수집가이다. 그의 면모는 포드 박물관과 그의 가족이 살던 집을 방문해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포드 박물관은 자동차 박물관이 아니다. 미국의 근대사를 배우고,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종합 박물관이었다. 디트로이트 축구경기장의 이름도 포드 필드! 축구팀도 포드 패밀리의 소유다.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굵직굵직한 건물들의 이름과 역사엔 포드가 빠짐없이 거론된다.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포드가의 우아하고 품격있는 삶을 엿볼 수 있었던 곳은 그들이 살았던 집에서이다.

60개의 방이 있는 대부호의 저택에 들어가 구석구석 그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지만 입구에 있는 온실 컨셉트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브런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디또 한군데의 추천장소는 DIA 다. 영화 프리다를 감명 깊게 본 나는 그녀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대형 프레스코를 볼 수 있었던 디트로이트 뮤지엄( Detroit Institutes of Art, 이하 DIA) 방문을 내심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DIA는 규모면에서 미국 여섯번째 안에 드는 뮤지엄이지만 관람객 중심의 전시방식 때문에 다른 곳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기 곳. 반 고흐의 오리지널 작품을 지나 디에고의 방에 이르자 거대한 프레스코가 압도하듯 머리 위에 쏟아진다. 그 과감한 색채와 희소성에 이 작품이 DIA 의 심볼이 되었다. <디트로이트 뮤직시티>라는 일본만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네기시’는 서정적인 스위트팝 싱어를 꿈꾸지만 현실에선 악마적인 분장을 한 데스메탈 그룹의 리드싱어 ‘크라우저`로 활동하면서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 왜 하필 이 데스메탈 밴드의 이름이 디트로이트 뮤직시티일까? 디트로이트가 가진 철강이나 자동차의 하드한 이미지 때문일까? 지구의 끝처럼 느껴지는 쓸쓸한 모습의 회색 거리나 반쯤 파괴된, 무너져가는 건물들을 상상 속에 그려본 이들이라면 디트로이트란 이름에서 이젠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크라우저’의 모습에서 서정성 가득한 아티스트를 꿈꾸는 ‘네기시’ 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디트로이트는 거리마다 아트가 가득하고 여유로움이 있는 휴양 도시다. 안 믿어도 어쩔 수 없다. ‘네기시’ 의 진짜 모습을 난 힐끔 보았으니까. 언젠가 재즈 페스티발이나 테크노 뮤직 페스티발이 열리는 5-6월 즈음에 다시 한 번 가야겠다. 아 물론, 그 땐 캐나다의 윈저도 방문할거다.

디트로이트로 가는 길 델타항공으로 인천공항에서 디트로이트까지의 직항편이 생겼다. 그 동안 갈아타는 불편을 겪으며 오랜시간 했던 고생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매주 화, 수, 목, 토, 일 주 5회. www.delta.com 문의 디트로이트 관광청 www.visitdetroit.org